2016. 1. 18. 14:00



<씨엘(CIEL)>, 이비엔X라리에트.

 

 

 

*17권 이후. 작품 내 전개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심장이 뛴다.

 

 

 

“이비엔?”

 

“...응? 아, 미안해 라리. 잠깐 나도 모르는 새 다른 세상에 다녀왔나봐. 무슨 얘길 하고 있었지? 내일 수업? 쇼핑? 펜타곤?”

 

“아니야, 별 얘기 아니었어. 오늘 쇼핑이 피곤했지, 이비엔. 뉴턴 시내 전체를 돌아다니느라 고생 많았어.”

 

“아냐 아냐! 전혀! 라리 너와 다니는 건 언제나 즐거운 걸. 오늘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고, 외출복 두 벌에 기숙사 안에서 입을 거 세 벌! 게다가 네가 골라준 구두는 처음부터 날 위한 것처럼 꼭 맞았구. 뭣보다 오늘의 가장 큰 수확! 저 도자기 세면대를 보기만 해도 기분이 마구마구 좋아지는 것 같아. 주인 아저씨가 시에라에서 특별히 가져왔다면서 가게에 들여놨을 때부터 딱 우리 방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왔거든. 꽃 장식도 정말 정말 예쁘고... 누가 가져왔는지 꼭 어울린다, 그치. 누구처럼 사랑스럽고 귀여워."

 

"얘는... 이비엔 넌 그런 말을 참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니까..."

 

"꺄아아, 라리, 지금 표정 너무 귀여워! 너는 어쩜 이렇게 귀엽니... 이럴 때면 이 장면을 종이 같은 데에 남길 수 있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짠! 하고 지금 네 모습이 담기는 거지. 너무 허황된 소리인가? 나중엔 그런 게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마법으로든 뭐로든 말이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당장 네 손에 그런 게 없어서 내겐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무튼! 어서 자는 게 좋겠어. 시계 좀 봐. 벌써 새벽 세 시야, 이비엔."

 

“흐흠, 글쎄."

 

"응?"

 

"참, 라리, 크라이트 후작부인이 초대장을 보내 왔어. 초대장 더미에 묻혀서 못 볼 뻔 했지 뭐야? 요새 이 이비엔 마그놀리아를 찾는 사람이 워낙에 많아야지. 그런데 문제는, 안토니아 자작부인이 이틀 전에 보내온 연회초대하고 날짜가 꼭 겹쳐버렸단 거야! 어때? 어딜 가는 게 좋을까? 네 생각은 어때, 라리? 후작부인의 살롱에서 나오는 스콘이 맛있었는데. 당연히 우리 엄마 솜씨엔 비할 수도 없지만. 엄마의 요리 솜씨는 세계 제일이야. 라리 너한테도 맛 보여주고 싶다... 아무튼 후작부인의 살롱에 갈까? 그래, 생각난 김에 답장을 써야겠어."

 

"이비엔, 이비엔. 그건 일어나서 내일 써도 늦지 않아. 눈에 졸음이 가득한 걸. 내일 하자. 내가 봉투에 주소 쓰고 정리하는 거 도와줄게."

 

“으응... 그치만 지금 자고 싶진 않다구. 그런 기분이야. 오늘이 이대로 지나가는 게 아까워. 그러니까 라리, 이것만 하고 자자, 응? 금방 끝날 거야. 그리고 어차피 지금 자나, 한 시간만 더 있다 자나 차이 없잖아."

 

"하지만 내일 펜타곤 정기 순찰도 있잖아. 네가 피곤해할까봐 그래. 어제도 숙제 한다고 늦게 자 놓곤."

 

"그렇게 따지면 라리 너도 늦게 잤잖아. 같이 했으면서. 미스 펜튼이 역사 과제 분량을 늘리지만 않았어도 일찍 잤을텐데."

 

"응, 네 말이 맞아. 그것 때문에 우리 둘 다 늦게 잠들었지. 그러니 오늘은, 더더욱 일찍 자는 게 좋지 않을까?"

 

"...알았어. 자야지, 그래. 이번엔 져 주는 거야, 라리. 난 이대로 밤 샐 수도 있었어."

 

"기꺼이 져 줘서 고마워, 이비엔. 이제 불 끌게. 이불 덮었지?"

 

"응... 잘 자, 라리."

 

"잘 자, 이비엔. 내일도 즐거운 날이 되길."

 

 

 

“...라리."

 

"......"

 

"라리, 자?”

 

“......”

 

“있지, 라리. 오늘은 정말 즐거웠어. 네 덕분이야.”

 

"......"

 

"늘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어."

 

"......"

 

"잘 자, 라리."

 

 

 

정적.


 


-

 

 

 

 

 

심장이 뛴다.

 

숨을 내쉰다.

 

 

 

정적.

 

 

 

 

 

-

 

 

 

 

 

심장이 뛴다.

 

 

 

라리.

 

 

 

"응?

 

"어?"

 

"방금 부르지 않았어?"

 

"어... 생각하고 있던 게 말로 튀어나왔나봐. 어머. 어머나. 이렇게 내가 항상 네 생각만 하고 있다는 걸 들켜 버리다니... 하지만 기억해 줘, 라리. 난 네게만 쉬운 여자라는 걸..."

 

"......이비엔, 너 정말..."

 

"라리 얼굴 새빨개졌대요!"

 

"...이따 방에 못 들어오게 할 거야."

 

"세상에, 날 내쫓을 거야 라리? 우리 방에서? 네게 열렬한 애정을 고백했을 뿐인데 그게 죄목이 되는 거니? 난 너무 슬퍼 라리... 어째서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거야... 장소가 문제인 거야?"

 

"응, 그런 것 같다, 이비엔. 적어도 사람 많은 점심시간에, 로우드의 복도에서 청혼하는 건 아니지."

 

"안녕, 도터. 역시 그렇지? 하지만 갑자기 마음이 넘쳐 흘러버려서 말야."

 

"이비엔."

 

"반지정돈 준비하고 다녔어야지. 이클리체와 유디스처럼 사실혼이 아닌 다음에야."

 

"아직 청혼 안 했대? 웬일이야, 이클리체 선배 그렇게 안 봤는데."

 

"이비엔..."

 

"유디스가 그런 덴 관심이 없을지도? 이클리체면 또 모를까."

 

"그래도 그건 아니지. 여자라면 한 번쯤 낭만적인 프러포즈를 꿈꾸기 마련이라고, 도터. 뭘 모르는구나? 그러니 라리, 기다려. 내가 꼭 멋지게 프러포즈를 해줄게. 드레스는 프라임로즈 샵에서 맞추고, 반지는..."

 

"저기, 우리 이런 대화 그만 하고 여길 벗어나면 안 될까?"

 

"오... 이비엔, 네 패밀리어 얼굴이 터질 것 같아. 난 가던 길 가 볼게."

 

"잘 가, 도터! 점심 맛있게 먹어!"

 

"엉, 그래. 펜타곤 모임 때 보자, 이비엔, 라리에트."

 

 


'나'는 잰 걸음으로 앞서나가는 라리의 뒷모습을 본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가 훤해 쫓아가다 말고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라리가 돌아본다. '나'는 그대로 달려가 품에 안긴다.

 

 

 

"너도 참."

 

"미안. 부끄러웠어? 그치만 라리, 진심이야. 너랑 세상 사람 모두를 놓고 고르라고 한다면 난 망설임 없이 널 택할 거라구."

 

"후후. 점심 먹으러 가자, 이비엔. 오늘 디저트로 당근 케이크가 나온다고 했어."

 

"......"

 

"이비엔?"

 

"당근 케이크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좋아, 얼른 가자 라리! 제일 큰 조각을 받아낼 거야!

 

 

 

'나'는 뛰어간다.

 

 

 

라리.

 

라리.

 

 

 

숨을 삼킨다.

 

 

 

정적.

 

 

 

 

-

 

 

 

 

 

심장이 뛴다.

 

 

 

라리.

 

라리, 여긴 어딜까. 온통 낙엽 투성이고 축축해.
너무 춥고 이상한 소리가 자꾸 들려. 빗소리, 빗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한동안 비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추운가요?'

 

 

 

손발이 얼어붙은 것 같아. 온 몸이. 움직일 수가 없어.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려. 내가 드디어 미친 걸까?

 

 

 

'당신의 신체는 약합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세요.'

 

 

 

아무래도 미친 거겠지? 그 날 이후로 제정신이었던 날은 없었으니까.
라리. 너무 아파. 아파. 추워. 아파.

 

 


'이곳에선 당신을 보호할 수가 없습니다.'

 

 

 

라리. 너무 시끄러워. 어쩌지. 저 시끄럽게 떠드는 것들을 모두 쫓아줘, 라리. 

라리.
어디야.

나 아파.
왜 대답해주지 않아. 
왜.
왜 그랬어?
​나만의 라리일 수는 없었던 거야?
네 패밀리어로 살겠다 맹세했는데. 네가 내게 미래를 말해줬잖아. 보여줬잖아, 라리.
라리.
어디 있어. 아무데도 네가 없어.
라리.
미안해. 미안해. 내가 없어서 미안해. 미안해, 라리. 정말 미안해. 미안. 미안.
널 따라갈래.
죽게 해줘.

 

 

 

숨을 삼킨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심장이 멈춘다.

 

정적.

 

 

 

 

 

심장이 뛴다.

 

 

 

'그리고 다시 살아날 거고요.'

 

 

 

숨을 내쉰다.

 

 

 

 

꿈이었으면 좋겠어 깨어나면 네 옆이었으면 우리 방 침대 위 네 옆 악몽이었다고 칭얼거릴 수 있는 네 옆 그럼 영문도 모르고 날 달래줘 라리 추워 추워 아파 보고 싶어 라리

 

라리

 

 

 

숨을 삼킨다.

 

심장이 멈춘다.
 
정적.

 

 

 

 

 

심장이 뛴다.

 

숨을 내쉰다.

 

 

 

여기서 날 꺼내줘

라리

 

 

 

숨을 삼킨다.

 

심장이 멈춘다.

 

정적.

 

 

 

 

 

심장이 뛴다.

 

숨을 내쉰다.

 

숨을 삼킨다.

 

심장이 멈춘다.

 

정적.

 

 

 

 

심장이 뛴다.

 

숨을 내쉰다.

 

숨을 삼킨다.

 

심장이 멈춘다.

 

정적.

 

 

 

 

 

심장이 뛴다.

 

숨을 내쉰다.

 

숨을 삼킨다.

 

심장이 멈춘다.

 

정적.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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